• 방문자수
  • 오늘89
  • 어제60
  • 최대219
  • 전체 19,032

양천허씨 유래

양천허씨 유래

ma06.png 로왕(首露王)과 가락국(駕洛國) 허씨와의 관계

 

천지가 개벽한 후에 이 땅에 방국(邦國:국가)의 호(號)가 있지 않았고 또 군신(君臣)의 칭호(稱號)도 없었다. 추장 아도간(我刀干),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수유간, 유천간, 신 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 구간(九干)이 있었다.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에 구간(九干)의 9인(九人)이, 동한(東漢) 광무(光武) 건무(建武) 18년 서기 42년 임인(壬寅) 3월에 그 백성을 거느리고 계음(禊飮:부정을 씻기 위한 목욕제계의 행사)하다가 그 민중(民衆)과 더불어 구지봉(龜旨峯)을 바라보니 이상한 소리와 기운(氣運)이 있는지라. 가서 보니 금합(金榼)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거늘 보니 금합(金) 중에는 금색(金色)알 이 둥글기가 해와 같은 것이 6개라. 대중(大衆)이 다 절하고 신기(神奇)하게 여겨 아도 간(我刀干)의 집에 봉치(奉置)하였다가 익일(翌日) 또다시 회합(會合)하여 금합(金)을 열고 보니 금란(金卵)이 화(化:모양이 바뀌다)해서 동자(童子)가 되었는지라.

 

용모(容貌)가 기위(奇偉:기이하고 훌륭하다)하고 나날이 우뚝 자라 지각이 있어 불과 (不過)10여 일에 신장(身長:키)이 9척(九尺)이라. 시월(是月:이달) 망일(望日:음력 보름 날)에 처음 나온 분을 추대하여 국왕(國王)으로 삼고 금란(金卵)에서 탄생(誕生)하시었 으므로 성(姓)을 김씨(金氏)라 하고 시현(始現:먼저 나타났다는 뜻)하시었으므로 명(名: 이름)을 수로(首露)라 하고 국호(國號)를 대가락(大駕洛)이라 하다.

 

이국(理國) 7년 무신(戊申) 7월에 구간(九干)이 배필 선택을 청(請:여쭈다)하거늘 왕 (王)이 말씀하기를 “짐(朕:나, 천자의 자칭)이 이 땅에 내려온 것은 천명(天命:하늘의 명 령)이라. 짐(朕)이 배필(配匹:부부로서의 짝)을 맞이하고 왕후(王后:왕비)를 정케 함도 또한 천명(天命)이 있을 것이니. 경(卿) 등(等)은 염려하지 말라.”하시었다.

 

드디어 유천간(留天干)을 명(命:명령)하여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기다리고 섰노라니 홀연(忽然:갑자기)히 일(一:하나) 대선(大船:큰 배)이 나타나 과연(果然) 해중(海中)으로부터 깃 돛을 달고 뫼시니 호위하는 남녀(男女) 수십 인(人)이 한 여자(女子)를 뫼시고 아울러 석탑(石塔)을 싣고 온지라.

왕(王)이 의장대를 갖추어 영입(迎入:맞아들이는 뜻) 하신 즉 말하되 『첩(妾)은 아유타국(阿踰陀國 : 혹은 허황국(許黃國), 혹 천축국(天竺國) 이 모두 현, 인도지방)의 공주(公主)로 성(姓)은 허(許)요, 명(名:이름)은 황옥(黃玉:황(黃) 은 일작(一作:제일 잘된 짝), 황(皇:임금)이며 연령(年齡)은 16세(歲)라. 금년 오월에 부 왕(父王)과 모후(母后)가 첩(妾)에게 말씀하시되 「야양(爺孃:부모의 속칭)은 어제 꿈에 한가지로 황천상제(皇天上帝)를 뵈었는데 상제(上帝:하느님)의 말씀이 「가락국(駕洛國) 원군(元君:처음 임금) 수로(首露)가 하늘로부터 내려간바 대보(大寶)를 어거(御車)하여 이에 신성(神聖)하며 다만 새로 가방(家邦)에 임(臨)하였으나 배필(配匹)을 정(定)치 못하 였으니 경(卿) 등(等)은 공주(公主)를 보내서 배우(配偶:배필)를 삼으라.」하시고 말을 마 치자 승천(升天:하늘로 오름)하였는데 그 말씀이 아직 귀에 쟁쟁하다.」 하시며 「네가 가라.」 하시고 인(因:원인을 이루는 근본 동기)하야 석탑(石塔)을 실어주시며 말씀하시되「가히 풍파를 진압하리라.」 하시거늘 첩(妾)이 이로써 바다에 떠서 멀리 찾아 이르렀노 라.』 하여 기(旣:이미)히 배필(配匹)을 삼아 후(后:왕비)가 되시니라.

탄생(誕生) 10자(十子:아들 열)하시었는데 하루는 후(后:왕비)가 청(請)하여 말씀하시되 『첩(妾)은 천명(天命:하늘의 명령)을 받들고 부교(父敎:아버지의 교훈)를 받들어 섭해만리(涉海萬里:만리 길 바다를 건너)하여 와서 대왕(大王)을 뫼시니 동토(東土)의 객(客)이라. 첩(妾)이 사(死: 사망)함에 나의 성(姓)을 이어 전하지 못할 것을 슬퍼하나이다.』하시니 왕(王)이 가련히 여기시어 2자(二子:둘째왕자)로 하여금 허씨(許氏)로 삼아 모성(母性)을 후세(後世)에 전 (傳)하게 하시다.

 

한(漢) 영제(靈帝) 중평(中平) 6년(六年:서기189) 기사(己巳) 3월 1일 후 (后:왕비)께서 먼저 훙(薨:숨을 거두다)하시니 수(壽)가 157년이요 구지봉(龜旨峯) 동쪽 에 장례(葬禮)하시고 호(號)는 보주태후릉(普州太后陵)이라 하고, 왕은 이국(理國: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 158년이시며 한(漢) 헌제(獻帝) 건안(建安) 4년(서기 199년) 기묘(己卯) 3월 23일에 훙(薨:돌아가심)하사 납릉(納陵)에장례하시다.

 

수로왕(首露王)10세손(十世孫) 구형왕(仇衡王)이 나라를 신라(新羅)에 바치니 드디어 가락국(駕洛國)은 망(亡)하니라.

자손(子孫)이 혹 토지(土地)를 잃고 타경(他境:다른 장소)에 유리(流離:일정한 거처가없이 다님)하여 거주지(居住地)에서 관적(貫籍:본적지)을 하되 구방(舊邦:현 김해)에 머 물러 계신 분은 김해 허씨(金海 許氏)가 되고, 이주하신 분이 일(一:처음)은 하양 허씨 (河陽許氏)가 되고, 또 일(一:처음)은 태인 허씨(泰仁 許氏), 태인은 즉 시산(詩山)이 되 고, 일(一:처음)은 한산 허씨(漢山 許氏, 자손이 없음)가 되고, 일(一:처음)은 공암 허씨 (孔巖 許氏)니 공암(孔巖)은 즉 양천 허씨(陽川許氏)니라.

 

yh03.jpg

▲ 국가사적 제73호 가락국시조왕릉(駕洛國始祖王陵)

소재 : 김해시 서상동 312

 

yh04.jpg

▲ 국가사적 제74호 가락국시조왕후릉(駕洛國始祖王后陵)

소재 : 김해시 구산동 12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