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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편찬 간행사

족보편찬 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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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을 관향으로 한 시조는 허선문(許宣文)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공암촌을 시조 허선문(許宣文)에게 식향(食鄕)으로 하사(下賜)하였으며, 고려개국벽상공신 1등으로 채록하였다.

 

양천허씨 승지공 휘 돈(hj01.jpg)은 시조 宣자文자의 23세손이다. 증조부(曾祖父)초당공은 조선 중종12년(1517년 음, 12월 29일)출생하여 선조13년(1580년 음,2월 4일)62세에 사망하셨으며 고려말 재상이었던 10세조 문경공(文敬公) 휘공(珙)의 혈통을 이어받아 나식, 이여(李畬),화담서경덕, 퇴계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회재이언적을 사숙(私淑)하였다,

 

진사시에 2인(등)으로 급제하고 식년문과 갑과에 3인(등)으로 급제하여 사가독서, 사헌부장령으로 있을 때 종가(宗家)에 불이나 다시 짓기 위해 함경도 만호에게 재목을 부탁하였다, 공께서 이조 좌랑이 되었을 때에 이감(李戡)은 자기를 청요직(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천거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원망을 품었다. 이감이 자기집을 짓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만호에게 재목을 수송해 오도록 하였다, 집에 사역을 시켰다,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구금시켰다는 등 터무니없이 몰아붙여 결국 그 자리에서 물러나 강릉처가(예조참판 김광철)로 내려와 산수가 수려한 초당동(草堂洞)에 기거(起居)하였다.

 

그 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공조참의, 대사성, 예조참의, 동부승지, 우승지, 진하부사로(進賀副使)로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와 홍문관부제학, 경주부윤, 이조참의, 성균관대사성(현서울대총장),대사간,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문간(文簡)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서울대 한영우 교수 허균 평전)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시호 문숙. 문간(諡號 文肅.文簡)이며 청백리(淸白吏)로 선발되었으며, 예조, 병조, 이조판서를 지낸 악록공 성(筬), 장원급제 문장가 하곡공 봉(篈),홍길동전의 저자이며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하여 홍문관에서 아홉차례나 장원을 한 교산공 균(筠), 강릉 초당의 명당 연화지(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난설헌은 동양삼국에 이름을 떨치시고 남다른 집안과 뛰어난 재주, 출중한 용모에 여신동(女神童)과 같은 천인(天人)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문집인 <난설헌집>이 1608년에 출간되었으며 조선왕조시대 허씨 오문장가 가문으로 승지공(承旨公) 휘 돈(hj01.jpg)은 초당공(草堂公)의 장남 성(筬)의 손자이다.

 

승지공 휘 돈(hj01.jpg)의 부친 휘 보(hj-02.jpg)는 경술년 별시문과급제하였으며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공께서는 11형제를 두셨는데 승지공 휘 돈(hj01.jpg)은 넷째이다. 승지공(承旨公)은 문과에 급제하여 임금이 누차 관직을 제수하셨지만 잉루제불사(仍屢除不仕)하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증좌승지(贈左承旨)를 내려 받았다.

 

양천허씨승지공파강릉종중은 1529년 기축보(중중 24)에 이어 1911년 일제강점기초 악록공(岳麓公) 성(筬)의 10세손 31세 영(迎:1880)이 이조판서 성재공 전(傳)의 임자보(壬子譜)를 중간(重刊)한 이후 1936년 병자보, 1959년 기해보(己亥譜)를 간행한지 32년 뒤인 1991년 신미보(辛未譜)를 간행하였으나 많은 오기(誤記)와 누락이 확인되었다, 32년이 지난 2023년 2월 10일 파보를 위한 이사회와 설명회를 하고 2023년 4월 26일 홈페이지를 개통하였으며 인터넷족보와 서지(書誌)와 같이 편찬하였다.

 

승지공후손 가가호호(家家戶戶)는 선조유교(先祖遺敎)에 따라 부모를 섬기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귀감(龜鑑)이 되고 세상을 바르고 깨끗하게 살 것을 세세손손에 전하라는 “가전충효 세수청백”(家傳忠孝 世守淸白)의 선조유훈을 이어가므로 결코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가문(家門)으로 2024년 갑진보(甲辰譜)를 발간하였으며 자랑스런 미래세대(未來世代)를 이어 갈 것이다.

 

2024. 12, 30

양천허씨승지공파 강릉종중 회장 허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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