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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자료실

허경진의 초당문중과 강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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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5-31 11:21 조회1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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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진의 초당문중과 강릉] 1. 허균, 첫 저서 ‘학산초담’에서 강릉 인물들 소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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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는 조선중기 최고의 문장가·사상가이자 개혁가인 허균, 그의 누이이자 시인 허난설헌의 삶과 글이 교교히 흐른다. 이들이 남긴 많은 글들과 강릉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또다른 문인과 정치가 등 수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초당문중으로 더 깊게 들어가 봐야 하는 이유다. 강원도민일보는 허균·허난설헌 연구에 매진해 온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의 글을 격주로 연재, 새로운 세상에 대한 탐구정신과 유달리 깊었던 문학세계가 강릉에서 어떻게 태어나고 거쳐갔는지 톺아본다.

 

임진왜란을 만나 고향 강릉으로 돌아온 허균은 아들을 낳다가 죽은 아내를 사천 외가 옆에 임시로 묻고, 수많은 글을 썼다. 아내는 김대섭의 딸인데, 김대섭의 큰딸은 ‘지봉유설’로 유명한 지봉 이수광에게 시집갔다.

허균의 동서이고, 영의정 이성구, 문과 장원급제로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이민구가 이수광의 아들이니 허균의 처조카이다.

 

이민구는 허균의 조카인 동강 허보(1585-1659)와 어릴 때부터 한평생 형제처럼 친하게 자랐다. 허보의 아들이 진사 생원시에 다섯이나 합격하자 축하 글을 지어서 초당 문중에 뛰어난 손자가 많았음을 널리 자랑했으며, 서울과 강릉 두 집 살림을 하던 허보가 70세에 가족들을 데리고 논밭을 많이 상속받은 고향 강릉으로 내려갈 때 송별시를 지어 주었다. 허보는 8남 3녀를 낳아 초당 문중을 번성하게 했으므로, 장손은 아니었지만 승지공파가 결국 양천허씨강릉종중을 대표하게 되었다.

 

허균은 24세부터 몇 년 동안 사천 애일당에 살면서 수많은 글을 지었다. 26세 되던 1594년 2월 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벼슬하고 외교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요동까지 다녀왔지만, 여름에 모친상을 당해 다시 강릉으로 왔다. 그는 이 몇 년간 강릉김씨 외가의 애일당(愛日堂) 기문을 지으면서 자신의 호가 교산(蛟山)이 된 유래를 소개했고, 첫시집 ‘교산억기시’ 154편을 완성, 강릉 구석구석을 자세하고도 아름답게 기록해 강릉 최씨 최정립에게 전해주었다.

 

후대에 가장 널리 읽히고 높이 평가받은 책은 애일당 건너편 청학산을 보며 25세에 지은 첫 저서 ‘학산초담’이다. 굳이 직역하자면 ‘청학산의 나무꾼 이야기’인 셈인데, 이 책 64번째 이야기에서 강릉의 정기를 타고 뛰어난 인물이 많이 태어난다고 자랑했다.

 

“강릉부는 옛 명주 땅인데, 산수가 아름답기로 우리나라 제일이다. 산천이 정기를 모아가지고 있어 이인(異人)이 가끔 나온다. 국초(國初)의 함동원(함부림)의 사업이 역사에 실려 있고, 참판 최치운 부자의 문장과 절개 또한 동원만 못지 않다. 매월당(김시습)은 천고에 남다르게 뛰어났으니, 온 천하에 찾아보더라도 참으로 찾아볼 수 없다. 원정 최수성 또한 뛰어난 행실로 일컬어지고, 중종조 심어촌(심언광)과 최간재(최연)의 문장이 세상에 유명하다. 요즘 이율곡 또한 여느 사람과는 다르다. 작은형과 난설헌 또한 강릉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자신과 같은 시대 인물로는 율곡선생이 여느 사람과 달리 뛰어나다 했고, 작은형 허봉과 누이 난설헌 허초희가 강릉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고 했다. 허균은 임진왜란 통에 흩어진 작은형 허봉의 유고 500여편을 이 시기에 정리하였다. 이들이 지은 글을 통해 초당 문중과 강릉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보기로 한다. 연세대 명예교수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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