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의 초당문중과 강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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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7-24 09:32 조회181회 댓글0건본문
[허경진의 초당문중과 강릉] 2.기념공원에 허난설헌 생가터 없다.
강릉에서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솔향수목원 등 3곳이 2021년도 열린관광지 공원에 이름을 올렸다. ‘열린관광지’란 장애인, 고령자, 영·유아 동반가족 등 이동 취약계층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전근대 봉건적인 조선 중기에 살면서 남들보다 일찍 열린 세상을 꿈꾸었던 허균 허난설헌의 생가터가 열린관광지로 선정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강릉은 그 여세를 몰아 2022년 국내 첫 무장애 관광도시로 선정되었다. 유재론(遺才論)을 써서 적서차별과 지방차별 철폐를 주장했던 사백년 전 허균의 꿈이 ‘무장애’ 관광도시로 이뤄진 셈이다.
초당동에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이 설치된 이유는 솔숲 안에 난설헌 생가터가 있기 때문이다. 1976년 2월 18일자 강원일보에 강릉의 대표적인 고가 8채를 선정하고, 첫 번째로 이 집을 소개했다. “초당동 475의 3번지 1000여평 대지에 지은 고가로 이조여류시인 허난설헌(‘홍길동전’의 작자 교산 허균의 누님)의 생가. 초당 노송밭에 자리잡은 고가의 집터가 영동 8곳 명당 자리중의 하나. 30칸의 건물은 1969년 현소유자인 이광노씨가 매입, 관리하고 있다. 허난설헌의 부친 草堂許曄(초당 허엽)으로부터 전해오는 명당의 집터는 연꽃터 또는 열두대문집이라고 불러왔고 김씨 최씨 정씨로 주인이 바꿔왔는데 택호도 김씨일때는 안초당댁, 최씨일때는 최위관집, 정씨 주인일 때에는 댓골집으로 바꿔 오늘에 이르기까지 댓골집으로 불러오고 있다.”
석조건물인 유럽의 가옥들은 천년이 가지만, 목조건물인 한국의 가옥들은 몇십년마다 개축하고, 주인이 바뀔 때마다 집 이름도 바뀐다. 강릉시가 이 집터를 문화재로 신청하자 1985년 1월 17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9호 ‘이광로 가옥’으로 지정되었는데 안내판에는 “이 가옥은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허엽이 살던 곳으로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이라 전한다”고 안내판을 세웠다.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고옥이 문화재가 아니라, 이 동네 이름이 알려지게 한 초당 허엽이 살고 허난설헌이 태어났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문화재자료가 된 것이다.
강릉시는 생가터를 바탕으로 2000년 2월 16일 ‘허균 허난설헌 유적지’를 조성하기 위해 46억 3792만 5870원을 들여서 이광로 교수와 최안분 소유 토지 10만 9901㎡를 매입한 후 건물 12동과 주변 토지 3262㎡를 추가 매입하여 주차장 등 시설을 갖추었다. 생가터와 솔숲을 포함하여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이라 명명하고, 진입로를 준공하여 난설헌로라고 명명했다.
그후로 많은 국민들이 초당동 난설헌 생가터를 찾아오고, 초당 순두부가 널리 알려지면서 주말에는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왔다. 그러나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안에 ‘허난설헌 생가터’라는 안내판이 철거되고 ‘강릉 초당동 고택’이라는 애매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관광객들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택 안에는 허균 허난설헌 남매의 표준영정이 모셔져 손님들을 맞이하지만, 볼거리 먹을거리가 생기고 나자 정작 주인의 이름은 사라진 셈이다.
조선시대 초당에 천여평 대지를 가질만한 사대부는 초당선생 뿐이었다. 허균이 여러 차례 시를 지으며 강릉 초당에, 경포호 옆에 시냇물과 솔숲을 끼고 있는 고향집을 그리워했다. 이들 남매의 생가터 이름을 찾는 작업에 여러분들이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연세대 명예교수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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