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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자료실

허경진의 초당문중과 강릉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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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7-24 09:56 조회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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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진의 초당문중과 강릉] 4. 승지공파 종녀의 자서전에 보이는 강릉의 옛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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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에 고무신을 신은 한복 차림으로 1957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허미자 교수의 모습.

 

초당선생 문중에서 맏아들 악록 허성의 자손이 가장 번성했는데, 악록의 맏아들 동강이 초당에 돌아와 살면서 초당의 증손자인 승지공파가 강릉종중을 대표했다. 승지공파 10세손 허강은 영암군수를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양천허씨대종회 회장을 지내며 허균·허난설헌 선양에 앞섰다. 강릉 교동에서 태어난 그의 누이동생 허미자 교수도 평생 난설헌과 여성문학 연구에 헌신하였는데, 올해 93세가 되면서 한평생을 돌아보며 자서전 ‘향수’를 출판했다.

 

허미자 교수의 조부 허선은 강릉 신리면의 땅을 기증하여 1909년에 사립 신리학교를 세웠는데, 당시 대한매일신보에서 칭찬할 정도로 교사가 열심히 생도들을 가르쳤다. 부친 허달은 강릉군 신리면장과 철원군 마장면장을 역임하고 묵호에서 법률상담소를 운영했으므로, 허 교수는 망상소학교에 입학했다. 이 책은 19세기에 쓴 조부와 부친의 붓글씨 편지, 1939년에 받은 망상소학교 1학년 통신부, 창씨개명과 더불어 학교 이름도 망상국민학교로 바뀐 2학년 통신부, 망상국민학교 제7회 졸업사진 등으로 시작하여 백여년 전 강릉의 옛 모습들을 보여준다.일제 치하에서 광복이 되자 20리 넘는 북평까지 기차를 타고 통학하며 북평중학교를 다녔지만, 전쟁통에 태백중학교에 편입했으며, 다시 북평고에 입학했다.

 

담임 홍윤아 선생을 모시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 70년 전 여고생들의 교복 모습이 아름답다. 휴전을 앞두고 부산에서 입학한 이화여대 국문과 학생들이 판잣집 가교사에서 찍은 사진이 전쟁중에도 공부하려고 모여든 젊은 여성들의 열정을 보여준다. 지금과는 달리 주변에 다방이 하나 밖에 없던 이화여대에 4년 동안 머리를 길게 땋고 한복을 입고 다녔던 허 교수의 사진에서도 종갓집 딸의 기품이 엿보인다.

 

그를 시인으로, 학자로, 교수로 키워준 이화여대 교수 세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강릉 사천면 출신의 시인 김동명 교수에게서 시를 배우고, 화천군 강동면 출신의 이태극 교수에게서 시조를 배우며 그댁에 가정교사로 입주해 도움을 받았다. 고전소설을 가르친 손낙범 교수는 이화여대 전임강사 취직을 도와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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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허 교수가 대학에 입학해 고향을 떠나며 지은 시 ‘묵호항’, ‘대관령을 넘으며’를 비롯해 대학원·교수 시절, 그리고 강서시니어타워에 입주한 근년에 지은 시까지 37편이 시기 순으로 실려 있어 시로 읽는 자서전이기도 하다. “당신은 나를 알아볼까/노파가 되었으니/더 늙기 전에/하나님 나라에 불러 주소서” 등의 구절에서 아흔이 넘은 시인의 원숙한 사랑과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강릉에 있는 출판사 네트피아에서 이 책을 ‘강릉인1’로 간행했는데, 강릉단오제 강릉사투리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방춘순 여사의 구술자서전을 비롯한 원고들이 계속 강릉사람 이야기로 간행될 예정이다. 6월 16일 강릉근로자복지회관에서 열리는 허균전집 출판기념 학술대회에서 이 책을 고향사람들에게 배부하는 것도 뜻깊다. 연세대 명예교수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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