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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빛낸인물

가문을 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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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엽

(許曄, 1517~1580)

허성

(許筬, 1548~1612)

허봉

(許篈, 1551~1588)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1589)

허균

(許筠, 1569~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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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이조판서(吏曹判書) 악록공(岳麓公) 성(筬) 영정(影幀)

 

ma04.png  허성(許筬, 1548~1612)

 

자는 공언(功彥)이고, 호는 악록(岳麓), 산전(山前)이다.

허엽의 아들이며, 허봉. 허균의 형이고, 허난설헌의 오빠이다. 미암 유희춘의 문인으로 선조 원년(1568)에 생원이 되고, 선조 16년(158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선조 23년(1590)에 전적으로 통신사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황윤길(黃允吉), 부사 김성일(金誠一)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이때 통신사인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 의도를 지적했으나 부사인 김성일은 침략 우려가가 없다고 진술하자, 김성일과 같은 동인(東人)인데도 그 의견에 반대하고 침략가능성이 있음을 직고(直告)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조좌랑으로 강원도 소모어사(召募御史)로 자칭하여 군병모집에 진력하였다. 이어 정언. 헌납. 이조좌랑. 응교. 사인. 집의를 거쳐 선조 27년(1594) 이조참의로 승진하였으며, 선조 28년(1595) 대사성. 대사간.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이어 이조참판을 지내고 전라도 안찰사로 나갔다가 예조와 병조판서에 제수되었다.

그 뒤 이조판서에까지 이르렸다. 1607년 선조 임금이 죽을 때에 어린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이른바 ‘유교칠선(遺敎七臣, 혹은 고명칠신顧命七臣)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선조조에 학문과 덕망으로사림의 촉망을 받았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 『악록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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