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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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으로 강릉시 초당동475-3번지 연화부지형터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허씨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천재적이 시재(詩才)로 발휘하여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5세 무렵 안동김씨 성립(成立)과 혼인하였으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어린 자녀의 사망과 잇다른 친정집의 화액(禍厄)이 겹침에 따라 그 고뇌를 시작(詩作)으로 달랬다.
허균은 『학산초담』에서 “누님의 시문은 모두 천성에서 나온 것들이다. 시어(詩語)가 모두 맑고 깨끗하여 음식을 익혀 먹는속인으로는 미칠 수 없다 고 하였다. 그의 작품 일부를 동생 허균이 선조 39년(1606)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왔을 때 원접사 유근(柳根)의 종사관이 되어 그와 접촉을 하면서 난설헌의 시집을 주었는데, 주지번은 난설헌의 시에 감탄하면서 본국으로 가져가 중국의 역대 시문을 모은 책에 난설헌의 시를 수록하였던 것이다.
그 후 중국에서는 난설헌의 시풍을 따르는 여자 시인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숙종 37년(1711)에는 분다이야 지로 (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애송되었다. 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90호로 지정되었으며 묘(墓)는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산 29-5. 안동김씨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선영에 아들 딸 희윤 묘소가 옆에 나란히 있다.
喜胤 墓誌 荷谷 희윤 묘지 허 하곡(허 하곡 희윤 외삼촌)
苗而不秀者喜胤也(묘이불수자희윤야)
피어보지도 못하고 꺽인 아니는 희윤喜胤이다.
喜胤父曰誠立 余之妹婿也(희윤부왈성립 여지매서야)
희윤의 아버지는 성립誠立인데 나의 매부이다.
祖曰瞻. 余之友也(조왈첨. 여지우야)
희윤의 할아버지는 첨瞻인데, 내 친구이다.
涕出而位之銘曰.(체출이위지명왈)
눈물을 흘리며 비명碑銘을 짓는다.
皎皎其容. 晣晣其目(교교기용. 절절기목)
萬古之哀. 寄此哭 (만고지애. 기차곡 )
난설헌께서 남긴 문집들이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허난설헌 작품을 수집, 출판하여 많은 국민들과 후학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중국 소장본 조선시선(북경도서관), 난설헌시한(천진도서관), 일본 소장본 난설헌시집(동경국회도서관 동양문고), 미국 소장본 조선시선전집(버클리대학 도서관), 난설헌시(초당공파종녀), 쇄미록(진주박물관)을 수집하여 2024년도 난설헌 전집을 발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