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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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許篈, 1551~1588)
자는 미숙(美叔)이고, 호는 하곡(荷谷)이다.
유희춘의 문인으로 선조 원년(1568)생원시에 입격하고, 선조 5년(1572)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副正字)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예문관에 천거되어 검열(檢閱)이 되었고,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선발되었다.
선조 7년(1574)에 성절사 박희림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에 유성룡의 천거를 받아 이조좌랑이 되면서 정치권의 핵심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선조 17년(1584)에 병조판서 이이(李珥)의 직무상 과실을 들어 탄핵하였다가 갑사에 유배되었고, 2년 뒤에 풀려났으나 정치에 뜻을 버리고방랑생활을 하다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하곡 허봉은 허엽, 유희춘, 이황에게서 공부를 하여 주자학에 크게 경도(傾倒)되어 있었던 것은 그가 서장관을 자칭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양명학자들과 논쟁을 벌인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허봉은 전형적인 성리학자로서 그의 의식공간에 비친 명은 문명의 최고수준을 담지한 존재라기보다는 그에게 이상향이 되는 '동주 예문명' 을 척도로 하여 그것을 직접 가늠해볼 수 있는 체험의 장에 더 가까웠다. 허봉의 입장에서 조선과 명이 모두 '동주 예문명'의 일원으로서 본질적으로는 동등한 입장으로 인식한 성향이 강하였다.
허봉이 『해동야언(海東野言)』에서 어숙권(魚叔權). 조신(曺伸)등 서자(庶子)출신을 서술한 것도 이들에 대한 포용성을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다.